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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두리안 먹방 여행

냉탱 2020. 3. 31. 12:13

 싱가포르는 도시 국가이다. 작은 나라지만 화려한 도심도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도 있는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인 곳이다. 그러니까 1년 정도 지내니 더 이상 주말마다 갈만 한 곳이 없었다. 꼬박 5일을 기다려 마침내 주말이 와도 갈 곳도 할 것도 없이 하루 종일 뒹굴뒹굴하는 일상에 지쳐 어느 날 문득 아저씨, 아줌마들만 간다는 두리안 패키지 투어를 등록해 버렸다.

 

 당일치기 패키지 투어로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 조호바루로 국경을 넘어 떠나는 나름대로 해외여행인 셈인데 여행의 주목적이 관광보다는 "먹방"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 매년 두리안 수확기인 6월부터 8월까지만 한시적으로 있는 프로그램으로 맛 좋은 두리안을 즐기려면 6월 말부터 7월 사이에 가는 것이 좋다. 사실 이 시기에는 굳이 말레이시아를 가지 않아도 싱가포르에서도 맛 좋은 두리안을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그럼에도 굳이 두리안 투어를 등록한 이유는 이 요상한 과일, 두리안이 어떻게 나무에 매달려 있는 지 궁금했고 심심했고 너무 심심했으며 정말 심심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국가인 싱가포르에서 살기 전까지 나에게 두리안은 악취를 풍기고 무기로 써도 손색없을 듯한 외형을 가진 과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먹어 본 사람들은 너무 맛있다며 항상 칭찬 일색이었고 과일의 왕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과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살면서 언젠가 한 번쯤은 언젠가 먹어봐야겠다고 6년 동안 생각만 했다. 생각만 하다가 작년 이맘때쯤 과거 썸남이었던 현재 남자 친구에게 나의 오래된 생각을 무심코 이야기했는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예고도 없이 먹게 되었다. 준비해 온 두리안을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거절할 수도 지독한 냄새를 거절할 수도 없어 신속하게 입으로 넣었던 두리안은 진짜! 정말! 아주! 부드럽고 달달하고 맛있었다. (달달하고 씹는 맛이 있는 커스터드 크림을 먹는 느낌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첫 한 입 이후로는 지독했던 냄새가 맛있는 냄새로 바뀌었고 그 후로 일주일 내내 두리안만 보면 사먹 게 되는 두리안 중독에 시달렸다.

 

 두리안은 다 같은 두리안이 아니다. 품종에 따라서 Musang King, D24, D13과 같은 D시리즈, Red Prawn, Golden Phoenix, Green Bamboo, Black Pearl 등으로 불린다. 품종에 따라서 당도, 맛, 크기, 모양이 다르지만 대체로 단 맛과 쓴 맛으로 분류하고 99%의 사람들은 단 맛을 선호한다. 비싸고 맛있는 품종으로는 Musang King이 있는데 무게에 따라 시기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D시리즈도 꽤 괜찮고 가성비 대비 맛이 괜찮은 품종은 Red Prawn이다. 그래서 두리안을 한 번쯤 도전해 보려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품종은 Red Prawn이다. 적당히 달고 가격도 괜찮으며 실패 없는 맛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패키지여행의 시작은 집합에서 시작된다. 외국인인 내가 못 미더웠던지 여행사 직원은 나에게 약속시간과 장소를 신신당부했다. 이 여행의 유일한 외국인으로 민폐를 끼칠 수 없었던 나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화장도 하지 않고 20분 전인 5시 40분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불안해하며 그렇게 서성거리기를 10여분 사람들이 슬슬 모여들었고 버스도 왔고 가이드가 와서 이름을 확인하고 나에게 스티커와 여행 일정 및 광고가 담긴 빵빵한 봉투를 나눠주었다.

 

Tip 1. 이 시기에 말레이시아 조호바루로 당일치기를 가는 여행객들이 많기 때문에 가이드 및 여행사 직원이 본인들의 손님을 빨리 인지하기 위해서 스티커를 꼭 보이는 곳에 여행 일정이 끝날 때까지 붙이고 있어야 한다.

Tip 2. 제공되는 식사가 턴 테이블에 앉아서 손님들과 나눠 먹도록 제공되기 때문에 본인의 테이블 넘버를 꼭 기억해야 한다.

Tip 3. 버스 좌석 배정은 무시해도 괜찮다. 아무도 지키지 않고 가능한 빨리 탑승해 편한 자리를 선점하는 게 더 중요하다. 

 

 오전 6시. 예정 시간에 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쥬롱)에서 한 차례 손님들을 더 태운 후, 말레이시아 조호바루로 떠났다. 내가 아는 싱가포리언들은 걸을 때 만큼은 세상 느긋한 사람들이었는데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할 때만큼은 진짜 빨랐다. 혼돈의 카오스를 무사히 지나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하면 말레이시아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이 분들이 스티커를 보고 본인 손님들을 찾기 때문에 스티커는 반드시 눈에 보이는 곳에 붙여놔야 한다. 

 

 첫 번째 일정은, 아침 식사

 로컬 푸드코트에서 원하는 음식을 구입해서 먹으며 된다. 간단한 요기 거리부터 해산물까지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여기에서 나는 딤섬을 사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이 곳에서 제일 맛있던 건 Otah (인도네시아 로컬 음식)를 딤섬처럼 만든 것이었는데 약간 신전 떡볶이 맛이 나는 어묵이었다. 진짜 맛있었다. 

 

초록 나뭇잎에 돌돌 쌓인 비주얼의 딤섬이 바로 신전 떡볶이맛 어묵, 오타(Otah) 딤섬

두 번째 일정은, 벽화 마을

 20-30분 정도면 둘러 볼 수 있는 크기의 작은 벽화 마을이었는데 간간히 소품도 전시되어 있었고 컨셉을 잡고 사진을 찍는 것도 재미있었다. 말레이시아의 문화는 생소한 것이라서 신기했고 화교의 영향인지 중국스러움도 혼재되어 있어 각각의 벽화를 보는 게 재미있었다. 또한 포켓몬스터, 이웃집 토토로 등의 캐릭터 벽화도 있었는데 진짜와는 다른 오묘한 느낌이 든다. 진짜 캐릭터와 캐릭터 벽화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찾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세 번째 일정은, 두리안 뷔페

 드디어 이 패키지 투어의 주 목적인 두리안 뷔페에 도착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가게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두리안을 내가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는 곳을 상상했지만 현실은 길 한복판에 천막으로 햇빛만 겨우 가린 곳이었다. 그래도 두리안은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내가 먹고 싶을 때까지 무제한으로 두리안이 제공되는 사실은 맞았다. 

 두리안 뷔페를 즐기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랜덤으로 4-5명씩 테이블에 앉아서 두리안을 먹는다. 두리안은 직접 가서 먹고 싶은 걸 선택하면 가게 직원이 잘라 준다. 품종은 Red Prawn, D시리즈 2종류로 3가지 정도였고 큰 사이즈부터 작은 사이즈, 덜 단 맛부터 아주 단 맛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진짜 이 날 원 없이 두리안을 먹은 것 같다. 원 없이 먹었지만 겨우 1개 다 먹은 게 최대라 내 조그만 위를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행복한 경험이었다. 두리안 뷔페라니!

 

Tip 1. 두리안은 열을 내는 과일이다. 두리안을 먹은 후에는 찬 음식을 먹어 줘야 하는데 과일의 여왕인 망고스틴, 코코넛 워터, 람부탄 등을 먹는 것이 좋다. 안 먹으면 간혹 코피가 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여행 중에 두리안을 먹은 후, 과일이 제공된다면 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함이나 맛이 없더라도 몇 개는 먹는 것이 좋다.

Tip 2. 따로 비닐장갑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냄새로부터 손을 지키기 위한) 비닐장갑, (다 먹은 후를 위한) 가글, (만약을 대비한) 물티슈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두리안 먹방 후에는 두리안 농장에 들러 두리안 나무도 구경했다. 특이했던 것이 말레이시아 두리안 농장에 가서 태국 두리안 나무를 보고 왔다. 두리안 나무는 정말 컸고 두리안은 정말 높이 달려있었는데 두리안의 색깔과 나뭇잎의 색깔이 유사해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 커다란 두리안이 여리여리한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게 너무 신기했다. 잘 익은 두리안은 때가 되면 알아서 떨어진다고 한다. 사람들은 떨어진 두리안을 줍는 방식으로 수확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두리안 나무 아래에 그물을 설치해 두었다.  또, 두리안이 워낙 크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두리안 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서 농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두리안 나무와 일반 과일나무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번호가 붙어 있고 그 아래에 그물이 설치되어 있다면 그게 두리안 나무이다. 

 

오른쪽 사진에 있는 나무에는 두리안 다섯 개가 꼭꼭 숨어 있습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 

네 번째 일정은, 점심 식사

 쇼핑센터에 한 차례 들려 화장실 이용 후, 점심을 먹으러 갔다.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먹으러 간 것이다. 정말 "먹방"에 최적화된 스케줄이었다. 모두들 배가 불러서 거의 먹지 않았고 한 두입씩만 먹어서 음식이 많이 남았다. 모두들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만 3번째로 온다고 하는 아저씨가 항상 이렇게 음식이 남는다고 너무 아깝다고 했다. 그리고 내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이 아저씨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나도 이 점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에서 먹었던 메뉴는 모두 내가 처음 보는 음식들이었는데 가장 신기했던 메뉴는 과일 샐러드 치킨이었다. 지금까지 치킨은 따뜻할 때 먹는 것인 줄 알았다. 차가운 샐러드와 같이 나온 치킨은 새콤하고 나름 상큼한 것이 잡내도 안 나고 맛있었다. 이 메뉴를 보고 놀란 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싱가포르인들도 처음에는 신기해하고 한편으로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더니 막상 먹어본 후로는 생각보다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음식은 줄 지 않았지만 이 음식만은 내 테이블에서 조금씩 줄어감이 보였다. 이 음식의 존재는 내가 가진 식재료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깨버렸다. 

 

다섯 번째 일정은,  쇼핑몰

 먹방을 끝내고 다 같이 간 곳은 최근에 지어졌다는 조호바루의 패러다임 쇼핑몰이었다. 새로 생긴 쇼핑몰이라서 그런지 크고 깨끗하고 많은 브랜드들이 입점되어 있었다. 싱가포르에는 없는 SPAO와 MIXXO가 입점되어 있어 오랜만에 한국 옷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국 제품 및 브랜드가 꽤 많이 입점되어 있었는데 진짜 신기했던 건 최근 이슈가 있었던 블리블리 화장품까지 찾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걸 보면서 이게 바로 한류인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싱가포르의 물가가 워낙 비싸서 주말이면 싱가포르인들이 조호바루에 넘어와 외식, 미용, 세차, 주유, 마사지를 하고 생필품을 싹 쓸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버스에 다 같이 모였을 때, 싱가포르 사람들 손에 쇼핑백이 1-3개씩 들어 있었다. 싱가포르인들에게 허용되는 면세 범위는 SGD 100이고 외국인 노동자인 나에게 허용되는 면세범위는 SGD0이다. 저렴한 점은 좋지만 이 점이 번거로워서 막상 조호바루에 가도 쇼핑을 잘 안 하게 되는 것 같다. 

 

여섯 번째 일정은,  야시장

 여행을 가면 항상 그 나라의 시장을 들리는 편이다. 어떤 물건을 파는 지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고 새로운 음식이나 과일을 보면 시도해 보는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야시장에서는 귀찮아서 사진을 별로 안 찍었지만 이 일정에서 제일 재미있던 장소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야시장에는 큰 푸드코트도 같이 있어서 이 곳에서 저녁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왼쪽 사진은 주인에게 가지 못 한 택배들. 이 꾸러미에서 일정 금액을 내고 랜덤으로 택배를 뽑을 수 있다. 더불어 주변 사람들의 흥미진진한 눈빛과 관심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사실 이번 여행의 핵심이었던 두리안 뷔페는 생각보다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일정 자체는 재미있었고 당일치기 일정임에도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도 또 가려고 한다. 그 때는 6월 말이나 7월 초쯤 갈 생각이다. (이 기간의 두리안이 훨씬 상태도 맛도 좋다고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싱가포르 어르신들과 엮일 일이 없었는데 하루 동안 이 분들과 다니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든 이방인에게 어르신들은 따뜻하다. 그 따뜻함도 좋았고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버스만 타면 손쉽게 다음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것도 몹시 편했다. 심심하지 않았던 주말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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