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탱의 냉탱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보로부두르 사원에서 맞이하는 아침 본문

여행/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보로부두르 사원에서 맞이하는 아침

냉탱 2020. 4. 2. 10:00

 보통 때라면 자고 있을 새벽 3시. 보로부두르 사원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3시 40분, 어제 예약한 여행사에서 보내 준 차를 타고 호텔 두 군데에 들려 몇 명을 더 태운 후,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출발했다. 차에 타고 알게 된 사실인데 나와 같은 차를 타고 있던 3명은 보로부두르 사원이 보이는 언덕에서 일출을 보는 상품을 예약했고 나만 사원 안에서 보는 것이었다. 운전사 아저씨가 계속 나에게 언덕에서 보는 게 사람도 없고 아름답다면서 다같이 언덕에서 보는 게 어떻냐고 끈질기게 물어봤다. 구글 사진도 찾아서 보여줬는데 전문가가 찍은 사진이 이 정도라면 내 눈으로 보는 건 연초에 산에서 보는 일반 일출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원래 계획대로 보로부두르 사원에서 보겠다고 계속 이야기했다. 아저씨는 보로부두르 사원에 거의 도착해서야 나를 설득하는 걸 포기했다.

 

리조트 내부에서 나눠주는 손전등. 사실 사람도 많고 직원들도 있어서 쓸 필요는 없었다.

 보로부두르 사원 일출 여행은 마노하라 리조트에서 시작된다. 이 사원에 방문하는 것은 이번 인도네시아 여행의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에 숙소 예약을 할 때, 이 곳에서 묵을까 했지만 시내에서 많이 떨어져있다는 평과 혼자 묵기에는 부담스러운 금액 때문에 포기했었다. 일행이 있거나 하루를 온전히 보로부두르 사원에서 보내고 싶다면 이 곳에서 숙박 후, 사원을 보러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실제로 꽤 많은 숙박객들이 보로부두르 사원 일출 여행에 참가하는 듯 보였다.

 마노하라 리조트에서 표를 확인하고 손전등을 받고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리조트 내 식당에서 출발해서 15분 정도 걸려 사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 안에서 아저씨와의 설전은 새벽같이 일어나 피곤한 나의 잠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졸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어둠 속에서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갈 수 있었다. 주변은 어둡지만 보로부두르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과 안내해주는 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해가 뜨기 전,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해가 뜬 후의 보도부두르 사원의 모습

 사원에 도착한 후에는 위로, 위로 올라가야 한다. 계단이 조금 가파르니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조심조심 천천히 올라가는 것이 좋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 제일 높은 곳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이미 해가 뜨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다. 사원의 분위기 때문인지 일행이랑 온 사람들도 조용히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주변에는 조용히 명상을 하는 분도 계셨다.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해가 뜰 방향을 보며 조용히 기다렸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지루했다. 일상에서는 잠깐이라도 시간이 나면 핸드폰을 봤고 기다리는 시간에도 당연히 핸드폰을 봤다. 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한 적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기다림도 답답해 하다보니 여유를 느낄 수도, 생각을 할 시간도, 주변을 둘러 볼 시간도 없이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보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가 다시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들었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자리를 뜬 덕분에 나는 해가 잘 보이는 자리에서 편하게 일출을 기다릴 수 있었다.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하늘은 게속 변했다. 처음에는 어두워서 사람들의 불빛에 의지했는데 차츰차츰 밝아졌다. 밝아지는 동안 하늘은 보라색이었다가 연보라색이었다가 분홍색이었다가 주황색이었다가 색을 끊임없이 바꿔가면서 곧 기다리는 해가 올거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리고 마침내 조금씩 해가 떠올랐다.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해가 떴고 새벽부터 일어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출을 본 사람들은 목적을 달성하고 보로부두루 사원을 둘러보기 위해서 자리를 떠났다. 해가 뜨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건 나에게 정말 새로운 일이었다. 아침은 학교이든 회사이든 어딘가를 가기 위해서 서두르는 촉박한 시간일 뿐이었는데 보도부두르 사원에서 보낸 아침은 여유롭고 잔잔하며 아름다웠다. 굳이 일출에 '새로운 시작', '새출발'의 의미를 넣지 않아도 해를 기다리고 보는 모든 과정들 자체가 의미있었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서기 780-840년 경에 세워진 불교사원으로 불교 교리에서 우주를 상징하는 만다라 스타일로 지어졌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힌두교 왕조가 들어와서 방치되었고 화산 폭발로 잊혀지고 1814년 영국인들이 발견해서 네덜란드인에 의해서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복원 작업 후에도, 1973년 10년간 유네스코의 주도로 다시 복구작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보도부두르 사원은 프람바난 사원같이 폐허 한복판에 떨어진 느낌은 들지 않았다.  

 

 종 모양의 스투파는 보도부두르 사원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종탑 안에는 부처상이 있고 구멍 사이로 부처님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속설에는 부처님의 발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만지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소원을 이루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인걸까 힘들다는 것인걸까. 불교를 믿으면서 살아가기도 녹록치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교 사원 자체가 조계사, 봉은사처럼 한국에서 갔던 사찰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고 종탑의 모양도 특이해서 보도부두르 사원을 떠올리면 종 모양의 스투파가 떠오른다. 그 시기에 인도네시아 자바인들이 어떻게 이렇게 큰 사원을 만들었을까, 어떻게 설계를 하고 디자인을 했을까, 어떻게 조각했을까를 생각하면 너무 신기하다. 붓다에 대한 믿음 없이는 정말로 불가능한 일인 게 분명하다.

 

Tip1. 사원에서 행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미리 구글에서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제 경우에는 인도네시아 부처님 오신날 다음 날에 가서 행사를 놓쳤습니다.)

Tip2.호텔에서 새벽 3시 40분에 그랩을 확인했을 때, 호텔 근처(말리오보로 거리 근처)에 가능한 그랩이 4-5개 정도 보였습니다. 투어를 참여하기 싫다면 일행들과 그랩을 타고 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원에서 보는 보로부두르 일출 티켓은 조식 포함이다. 사원을 둘러보고 출발했던 식당으로 돌아오면 조식이 준비되어 있다. 음식이 종류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과일과 디저트도 몇 종류가 있고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을 정도로는 충분하다. 그리고 현지 음식도 꽤 나쁘지 않았다. 바로바로 튀기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바나나 튀김은 먹어보는 걸 추천한다. 이 곳에서 유일하게 줄을 서 있는 곳이 바나나 튀김을 주는 곳인데 기다리더라도 바로 튀긴 것을 먹는 것이 눅눅하지 않고 더 맛있었다.

 나는 사원을 둘러 보는 시간이 좀 오래걸렸다. 사원 벽면에 조각되어 있는 불교의 교리들을 찬찬히 살펴보기도 했고 이곳저곳에 있는 부처상들도 좀 보았고 사진도 많이 찍었기 때문이다. 고생해서 온 만큼 사원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밥을 먹는 시간은 20분 정도로만 잡았다. 예약한 차를 타기 위해서 빨리 아침 식사를 끝내고 약속 시간에 맞춰 정해진 장소에 갔다. 

 

Tip1. 음식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아침식사가 중요하다면 일찍 오는 것이 좋습니다.

Tip2. 식사 전에 처음에 받은 손전등을 반납해야 합니다.

Tip3. 사진을 안 찍어서 없는데 이 곳에서 빨간 스카프를 기념품으로 나눠줍니다. 절대로 쓰지 마세요. 스카프가 닿는 모든 것이 빨간색으로 물들게 됩니다.


 약속 장소에 도착했더니 운전사 아저씨와 차는 있는데 차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바깥에서 40분을 대기했다. 알고보니 같이 출발했던 일행 중에서 독일인과 스위스인이 오지 않았다. 아저씨는 내가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로 40분동안 안내 방송을 하고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뛰어다니면서 그들을 찾으러 다녔다. 운전사 아저씨가 그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는 것 같아서 예약했던 여행사에 전화해 설명을 했더니 그제야 여행사 사장은 그들을 버리고 와도 좋다고 이야기를 했다. 12시에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기다리느라 덥고 짜증이 나 있었지만 이제 출발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운전사 아저씨의 핸드폰이 울렸다. 알고보니 그 독일인과 스위스인은 약속 장소가 아니라 사원 밖에 가게가 있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본인들이 기다리고 싶었던 곳에서 기다렸던 건지 의사소통의 오류가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땀을 흘리고 있는 아저씨한테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 모습이 화가 났다. 그래서 지금 몇 시인 줄 아냐고 아저씨가 엄청 찾아다녔다고 했는데 나한테 지금이 몇 시인지 대답하고 자기들도 무척 덥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릴 때, 내가 타고 있던 좌석의 머리 부분을 세게 치고 내렸다. 불교 사원에서 일출도 보고 마음의 여유도 느끼고 새로운 다짐도 했는데 시작도 전부터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현지에서 투어에 참여하다 보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이상한 사람도 만나고 좋은 사람도 만나기도 한다. 사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찾아 보니 내 생각보다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높은 것 같다. 이런 경험을 할 때, 화 나고 짜증이 나도 쉽게 털어버리든지 애초에 방지하기 위해서 따로 친구들하고만 다니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보도부두르 사원에서 만난 시크한 고양이

 

Comments